‘인간 중심주의’ 주제 의식 반영
감독 직접 각본 집필…개성 선명
‘성’ 담론서 여성주의 서사 강조
토니 콜렛 명연기 스크린 압도
탄생-죽음 통해 인생 의미 질문

흔히들 인간을 두고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표한다. 이럴 때는 아무래도 흉악한 범죄자나, 파렴치한, 또는 무뢰한과 같이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은 비일상적 존재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면 인간만큼 잔인한 생명체도 없다. 미식과 패션 산업에서 동물로부터 재료를 채취하는 방식을 두고 윤리적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 논리에 의해 여전히, 희소성 있는 사물은 고급스럽다고 간주되며 '돈 주고도 못 사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를 꾸준히 꼬집어왔다. 2006년작 '괴물'에서는 하수구에 폐기한 독극물로 생겨난 괴물을 다뤘고, '설국열차'에서 펼쳐지는 계급 간 갈등은 지구온난화로 모든 생명이 얼어붙은 빙설 지대를 배경으로 하며,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서는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 소녀의 우정을 통해 동물권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블랙코미디 속 눈에 띄는 여성 서사
그의 신작 '미키 17'은 전작들을 콜라주한 듯 필름 곳곳에서 그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외계생명체 크리퍼의 두부는 괴물을, 통통한 몸은 옥자를 연상케한다. 서사를 관통하는 주제의식도 마찬가지인데, 후반부 나샤의 대사에서 비롯되는 '외계인 담론'은 봉 감독의 사유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그의 전작 '기생충'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 특유의 '세련된 블랙코미디'는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 기존 영화들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여성주의적 서사가 특히 강렬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남자주인공 미키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여자친구 나샤를 내조하고, 독재자 케네스는 아내 일파의 언변에 휘둘리는 종속적인 면모를 보인다. 크리퍼의 모체인 마마 크리퍼 역시 직접적인 성별은 언급되지 않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든 크리퍼를 통솔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이는 나샤, 미키, 그리고 카이의 관계로부터 엿볼 수 있는 성해방(性解放)적 관점과도 연결된다. 멀티플이 된 미키 17과 18을 두고 걱정보다는 실험적 시도에 대한 기대에 들뜬 나샤, 그리고 자신에게 미키 17을 양보하라며 나샤와 미키의 연애 유형을 묻는 카이처럼 '미키 17'에서는 성에 대한 담론이 여성 캐릭터들에 의해 더욱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

◆일파 마샬이 경고하는 독재의 위험성
같은 외모를 두고 목소리와 표정만으로 미키 17과 18이 확연히 구분되도록 연기한 로버트 패티슨의 메소드 연기도 수려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는 인물은 단연 토니 콜렛이 연기한 일파 마샬이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과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등에서 미스터리하면서도 섬뜩한 캐릭터들을 표현했던 토니 콜렛의 명연기는 '미키 17'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일파는 '옥자'의 루시 미란도와도, '설국열차'의 메이슨과도 전혀 다른 유형의 빌런이다. 맛있는 소스를 위해 아기 크리퍼들의 꼬리를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잘라버리고, 비싼 카펫에 피가 튄다는 이유로 카펫 위에서 미키 17을 총살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이유가 있는 일파의 궤변은 대부분 그가 신봉하는 우생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는 악랄한 독재자 케네스를 낳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영화 말미 미키의 악몽신은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일파에 의해 다시 프린트되는 케네스를 통해 독재는 누군가에 의해 언제든 은밀하게 반복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16번의 '죽음'에 가려진 17번의 '탄생'
한편 두 시간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버거울 정도로 많은 메시지가 담긴 것에 비해 주인공 미키의 개인적 서사와 삶의 깊이감은 상대적으로 피상적으로 비쳤다.
니플헤임 행성 이주 프로그램 담당자의 샴푸 향을 맡은 미키는 자신의 실수로 엄마를 죽음에 몰고 간 아픈 과오를 떠올리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고 과거의 기억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미키라는 인물의 삶을 뒤바꿀 가장 큰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회상신이나 간접적인 언급만으로 끝나 특별한 반전이나 내러티브 확장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남기는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SF 장르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한국 영화계에서 '미키 17'의 탄생은 한국영화사 발전에 커다란 도약과도 같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SF 장르는 거대 자본이 뒷받침돼야 하는 제작 여건상 할리우드 영화 시장만이 도전할 수 있는 성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최근 몇 년 새 SF에 도전한 한국 영화들이 잇따라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기록했다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미키 17'의 총 제작비는 1억1천800만여달러(한화 약 1천630억원) 가량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역대 최고 제작비를 자랑하는 수치다.

그러나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단독으로 각본을 집필한 영화로, 다른 어떠한 전작들보다도 그의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또한 '옥자'와 '기생충'에서 호흡을 맞췄던 정재일 작곡가의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주에서의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공통된 메시지 아래에 또 한 번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묶어둔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수십 번 죽었다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에게 '죽는 건 어떤 느낌인지' 묻는다. 하지만 이들이 놓친 것이 있다. 미키는 16번 죽었지만, 17번 태어났다. 아무도 미키에게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소감을, 다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회를, 그 소중함을 묻지 않는다. 이는 생(生)보다 사(死)를, 즉 '탄생'보다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 무엇보다 잘 드러내는 질문이다.
미키의 열여섯 번의 죽음은 모두 같은 '죽음'이라는 결과로 귀결되지만, 열일곱 번의 탄생은 열일곱 번의 다른 인생을 맞이한다. 정말 인생의 소중함은 '일회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미키는 죽음에 대해 묻는 카이에게, 죽음은 몇 번이고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으며 힘들고 괴롭다고 고백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차이는 삶은 그 괴로움 속에서 행복이, 사랑이, 기쁨이 간간이 찾아와 우리를 내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6번의 죽음보다 17번의 삶이 더욱 본질적이지 않을까? 미키의 이름이 미키 '17'인 것처럼.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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