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자연을 사랑한 거장, 필름에 담긴 자문자답

입력 2025.07.15 16:46 최소원 기자
[영화읽기-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감독 복귀작·오리지널 스토리
특유의 '자연주의' 교훈 힘 빠져
복잡·난해한 플롯…공감 어려워
전체관람가에 무리한 서사
아날로그적 연출은 감동 전해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일본 만화계에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이 있다면, 애니메이션계에는 단연 '스튜디오 지브리'가 있다. 오늘날까지도 생성형 AI를 통해 '지브리 신드롬'이 불 정도로 지브리는 전 세계 문화 예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지브리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대체 불가능성에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중심으로 한 지브리의 창작물은 고유한 색채, 감성, 서사, 연출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 관객을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흥행과 영향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13년 선언한 공식 은퇴를 번복하고 내놓은 복귀작이다. 동명의 소설 제목과 주제를 차용했지만 플롯은 감독이 구상한 오리지널 스토리이며, 개봉 전까지 별다른 홍보가 없었던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주목을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자연주의'다. 지브리 스튜디오 설립 40주년을 맞아 공개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에서는 그가 자연과 어떻게 공존하고 사유하는지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그래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노노케 히메'만큼이나 자연의 가치와 경외를 직접적으로 담아낸다. 사라진 새엄마를 찾아 신비로운 탑 속으로 들어간 소년 마히토는 이세계(異世界)에서 요괴 왜가리와 함께 광활한 자연을 가로지르며 여정을 떠난다.

작품 속 숲과 들, 강 등 자연을 주요 배경으로 삼은 점은 '모노노케 히메'와 '이웃집 토토로'를 연상케 하고, 정령 같은 '와라와라'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숯검댕이를 떠올리게 한다. 전후라는 시대적 배경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과도 맥락을 공유한다.

다만 이번 작품은 감독의 장편작 중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대중들에게는 난해하고 공감이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반면, 평단에서는 감독의 세계관이 응축된 역작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처럼 평이 갈린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주제 의식과 그 전달 방식에 있다. 영화는 제목에서 제시하는 질문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지 못한다. 전작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강렬한 전언도 이번 작품에서는 힘이 빠진 느낌이다.

영화의 제목은 마히토의 새엄마 히사코가 남긴 책에서 따왔다. 마히토는 그 책을 발견한 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실종된 새엄마 나츠코를 찾아 이세계로 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만큼 관객은 이 작품이 삶에 대한 질문과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답은 물론, 그 질문 자체를 되새기게 만드는 동기조차 부족하다.

이세계의 질서를 상징하는 '돌'이나, 절대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큰할아버지의 역할 역시 설명이 빈약해 관객 스스로 복잡한 해석을 찾아야만 하는 구조다. 두 시간의 여정이 끝나고도 해설을 찾아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직접적인 질의응답을 기다렸던 관객들에게는 불친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설득력 부족했던 가족 서사

모성애와 가족의 연대를 표현하려는 시도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마히토의 가족 관계가 한국인의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마히토의 새엄마인 나츠코는 친엄마 히사코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즉, 마히토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고 1년 후 처제를 새 아내로 들인 것이다.

엄마가 죽은 지 1년 만에 이모가 새엄마가 되어 나타난 상황에서, 주인공 마히토를 비롯해 이러한 관계를 아무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 점이 모자 관계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방해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태평양 전쟁 직후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당시에 결혼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가문과 가문을 이어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엄마와 아버지가 다정하게 애정을 나누는 것을 마히토가 목격하는 장면과 아내가 죽은 지 1년 밖에 안 된 상황에서 만삭의 처제를 처로 맞이했다는 설정은 정서적으로 반감이 들 수밖에 없었고, 관객이 스스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합리화를 하게 되는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예술 작품에서 윤리적 판단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나 본 작품처럼 '전체 관람가'로 개봉한 애니메이션의 경우, 전 연령층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인식과 감정을 관객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섬세한 고민이 필요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마히토의 새엄마가 왜 하필 나츠코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정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 마히토와 친모 히사코 간의 모성적 유대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히사코와 나츠코 자매 사이의 끈끈한 정을 부각시키려는 연출은 다소 억지스러운 서사로 느껴졌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한 번으로 충분하다

전작들이 워낙 뛰어난 나머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브리만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여전히 빛난다. CG와 AI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에도 작화 한 컷 한 컷을 종이에 그려낸 장인 정신은 '역시 지브리'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자신이 화마로 죽는 미래를 알고서도 마히토의 엄마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현세계로 통하는 문을 넘어선 히미(히사코)의 모습은 죽음을 초월하는 모성애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또한 왜가리, 펠리컨과 앵무새 등 다양한 종의 조류(鳥類)가 등장해 배신, 갈등, 화해, 연대의 과정을 드러낸 것은 감독이 자연 속에서 인간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 지브리의 세계는 2030 세대의 어린 시절을 채워준 오르골 같은 존재다. 우리는 언제든 오르골을 열듯 토토로의 숲속을 걷고, 센과 치히로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며 그 안에 담긴 환상과 위로의 멜로디에 다시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마히토가 향한 탑은 어떨까. 과연 그곳 역시 다시 들어가고 싶을 세계일까? 필자의 경우 한 번 들어가 본 것으로 족한 경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감독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랐는가?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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