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시와 사진으로 담아낸 生의 숭고함

입력 2023.03.28 18:06 최민석 기자
김휼 사진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 출간
생성과 소멸의 순환 시적 승화
간결한 시와 친근한 풍경 결합
낮은 목소리로 새상 이치 포착

풍경과 시를 통해 시인의 사유를 담은 시집이 나왔다.

김휼 시인이 사진 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걷는사람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다. '걷는사람 사진 시선'은 이름 그대로 사진과 시를 한 권에 엮어낸 것으로, 시인이 걸어온 삶과 보아 온 풍경과 느껴낸 정서를 한데 모은 작품집이다. 독자들에게 시인이 마주한 일상의 풍경과, 그 안에 함의된 시상을 한번에 선사하여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시리즈다.

시집에는 67편의 시와 사진을 고루 담아내고 있다. 67편의 시선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생명의 순환과 그 너머의 삶의 진리를 조감한다. 일련의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은 오롯이 김휼의 시선으로 담아낸 일상, 자연, 풍경, 정서, 신앙을 속속들이 만나볼 수 있다.

'봄,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 '여름, 가뭇없이 밀려나는 먼 곳' '가을, 어둔 맘 그러모아' '겨울, 내가 걸어야 할 당신이라는 길' '다시 봄, 눈부신 찰나를 가지고 있는' 총 다섯 개의 부제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풍경을 통해 생의 숭고함과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담아낸다. "헤아리는 마음으로 피사체를 오래 들여다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기도 아닌 것 없"다는 시인의 말처럼 김휼은 꽃이 진 자리를 환한 연둣빛으로 채우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마음의 흉터도 무늬가 될 수 있음을 반추한다.

김휼 시인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여 결코 사소하지 않은 미학과 시상을 사진과 시로 표현했다.

그가 담아낸 사진 속 풍경은 길을 걷다 한 번쯤 마주칠 법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시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순간을 포착해 냈다. 그 시선은 미시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시심으로 나아가 시인만의 언어로 세상의 이치를 잠언처럼 조명한다. 김휼은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의 외연을 분명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이미지와 문자의 융합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산 그늘 내려오는/ 숲길에 앉아/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무들 물 삼키는 소리/ 연둣빛 가쁜 숨소리에 가슴이 뛰는 계절/ 찔레꽃 꽃 진 자리에 그리움이 커가는데/ 그대는 잘 있는지요/ 봄 햇살 깊게 스미는 그곳에/ 몸빛 고운 영산홍 몸을 열어 보이고/ 성급한 낮달 머쓱하여 돌아앉는 해거름/ 먼 데서 흘러온 구름에 마음을 실어 봅니다/ 지금 돌아갈 길에는 조용히 흘러내리는 노을/ 그리움은 얼마나 긴 목을 가졌는지/ 그대여, 물이 괸 곳에 물안개 피거든/ 끄지 못한 내 마음인 줄 아세요"('여기 보세요' 전문)

시인은 이렇듯 마음으로 써 낸 시어를 통해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웅변한다.

김인자 시인은 "이 책은 간결한 이미지의 시편들과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친근한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사진시집'이다"며 "시는 사진을 외면하지 않았고 사진 또한 시를 낯설게 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김휼 시인은 장성에서 태어나 지난 2007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백교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열린시학상, 목포문학상 본상을 받았고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를 냈다. 한편 김 시인은 오는 31일까지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을 주제로 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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