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고 단정한 시로 펼쳐낸 슬픔
슬픔 너머 있는 슬픈 것들의 시선들
쉽게 변질되지 않는 순수와 생명력
시는 때로 삶의 슬픔을 지향한다.
그 슬픔은 유한하면서 필연적이다.
성명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몰래 환했다'(파란刊)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슬픔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시 60편이 실려 있다.
성명진 시인의 시들은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괴팍하고 난해한 단어들이나 기괴하거나 난삽한 표현이 없다. 그의 시는 단순하고 담백하고 단정하다.
그러면서도 상투적인 관념이나 식상한 이미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낯설지 않은 언어가 시인의 손을 통해 낯선 사유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슬픔을 서로 나누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게 된다. 그의 시를 읽으면 고통과 분노는 사라지고 슬픔마저도 따뜻한 햇살이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그의 시의 힘이다.
시를 쓰는 것은 슬픔 한 가지를 이기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를 사랑해 줄 수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 있다.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슬픔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성명진 시인의 시 쓰기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위해 슬픔과 마주하는 일인 듯하다. 그의 이런 작업으로 만든, 아름답게 슬프고, 슬프게 아름다운 시편들이 들꽃처럼 슬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가지런히 내리던 눈발이/ 돌연 휘더니/ 마루 끝에 떡 앉는다// 언젠가 우체부가 궁금한 소포를 건네고/ 앉아 쉬어 가던 자리// 그런가 하면/ 밀린 이자를 독촉하러 온 사람이/ 죽치고 있던 자리// 마른 잎사귀들도 앉았지만/ 빗줄기가 천연덕스레 앉기도 했다// 멍하게 바깥을 바라보던 어미의 자국은/ 걸레질로 닦이지 않는다// 마치 지붕이 가려 주지 못한/ 어쩌면 일부러/ 세상으로 한 뼘을 내놓았을지 모를"('마루 끝' 전문)
이렇듯 그의 시들은 바로 이 슬픔에 주목하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에게는 모두 슬픔이 배어 있다.
시인이 그려 낸 슬픔의 모습은 다양하다. 슬픔이 잔잔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기도 하고 때로는 격렬한 슬픔이 우리의 전신을 뒤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슬픈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따뜻한 눈이다.
그의 시선은 슬픔 너머에 있는 슬픈 것들 속 삶의 깊이를 향한다.
따뜻한 시선을 머금은 슬픔은 감상적인 애절함이나 분노로 쉽게 변질되지 않는 순수함을 잉태한다.
슬픔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정서이기도 하다.
슬픔은 때로 슬픈 것들과 함께 하며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서로 공감하며 연대를 통해 이를 이겨내는 버팀목이다.
그것은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힘이며 우리를 위로하며 살게 하는 희망이다.
성명진 시인은 "말수가 줄었다. 그렇다고 나의 말들이 힘을 갖는 건 아니지 싶다"며 "시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어눌하더라도 사는 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낯설지 않은 언어가 시인의 손을 통해 낯선 사유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며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만나게 된다"고 평했다.
성명진 시인은 지난 9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93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 순간', 동시집 '축구부에 들고 싶다' 등을 출간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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