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서정의 칼을 차고 '물염'을 노래하다

입력 2024.10.23 09:24 최소원 기자
나종영 시집 '물염의 노래' 펴내
23년 만 신작…삶의 가치 질문
세속에 물들지 않는 길 노래해
나종영 시인

'시인아/그대가 진정 시를 쓰려거든/지상의 모든 시를/새벽 눈물 메마른 소금호수에/다 흘려버린 후//가난한 세월에도 물들지 않는/물염勿染의 시를 새기시라.'('물염의 시')

광주 출신의 나종영 시인이 시집 '물염의 노래'(문학들)를 발간했다. 지난 2001년 발간한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이후 23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는 '물염' 사상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물과 교감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궁극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물염'은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고희에 이른 시인이 어느 날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정자 '물염정'에 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참다운 길을 물으며 노래했다.

송정순(1521~1584)이 지은 물염정은 사화와 거듭되는 죽음, 유배의 시대에 지어져 그가 무도한 세상을 뒤로하고 은둔한 곳이다. 하서 김인후(1510~1560)는 18세에 장성에서 물염정을 오가며 기묘사화로 유배 온 신재 최산두(1483~1536)를 사사하기도 했다.

'물염의 노래'는 총 89편의 시가 4부로 구성돼 실렸다. 1부 '물염의 시', 2부 '편백 숲에 들다', 3부 '무등산은 어디서 보아도', 4부 '어머니와 초승달'이 그것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그동안 나는 그냥 시를 쓰는 사람보다도 한 사람 '시인'으로서 시대를 살아오기를 염원해 왔다"며 "사물과 사람에 대한 사랑, 겸손, 겸애와 더물어 이 훼절의 시절에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전했다.

임동확 시인은 해설에서 "기존의 질서가 동요되거나 일순간 정체성을 잃고 정지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당대의 모순을 해결하고 거기서 맞서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철인의 선비상의 추구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밝혔다.

'물염의 노래'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난 나종영 시인은 전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창작과비평사에 13인 신작 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등단했다. 1980년대 초 광주민중문화연구회와 도서출판 광주의 창립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으며 5·18민중항쟁 직후 결성된 '5월시' 동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출범을 이끌고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 부이사장으로 있다.

한편 시인은 오는 26일 오후 4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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