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제2차 진주성 싸움은 호남 의병 활약의 주무대"

입력 2025.10.19 16:38 최민석 기자
김동하 전 서영대 교수
'영호남 임란 의병…' 학술대회 발제
김천일 창의사, 10일 항전 전원 순국
수많은 호남·영남 의병 정신 계승 절실

임진왜란 전투 중 제2차 진주성 싸움은 호남 의병의 활약이 두드러진 전장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동하 전(前) 서영대 교수는 지난 16일 경남 진주시청 2층 시민홀에서 열린 '영호남 임란의병정신 및 창렬사 국가 제향 승격' 학술대회에서 주제 발표 '영호남 임란 의병 정신 탐색의 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호남절의록'에서는 대표적인 3대 호남의병으로 삼운사(三運使)를 들고 있는데, 바로 나주의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장군과 광주의 제봉(霽峯) 고경명 장군, 장성의 남문창의 의병 활동"이라며 "호남 의병은 진주가 무너지면 호남이 위험함을 깨닫고, 일제히 군진을 정비하고 임전불퇴의 각오로 진주성에 도착, 왜적과 벌인 9일 동안 밤낮 없이 전개된 처절한 전투를 통해 중과부적으로 결국 패배하며 의병 전원이 순국했다"고 말했다.

또 "이중 김천일 창의사는 장자 상건(象乾)과 함께 촉석루에 오르고, 뒤따라 고종후, 최경회, 양산숙 등 수십 인이 올라와 모두 같이 북쪽을 향해 재배한 뒤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했다"며 "처참한 패전였지만 10일 간에 걸친 진주성의 항전은 후세의 우리들에게 크나큰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고양하는 정신적 자산을 남겨 준 역사적 쾌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경명의 6천 의군은 비록 금산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곡창으로 군량 보급기지이며 병참기지인 호남을 보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 호남 석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일본 고바야카와 부대를 금산에서 저지 못하면, 일거에 전주가 짓밟히고 호남 전체가 적의 수중에 떨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천일 창의사 의병은 나주를 거쳐 담양, 순창, 남원, 인월, 함양, 진주로 이어지는 길을, 고종후 복수의병은 담양, 순창, 남원, 인월, 함양을 거쳐 진주를, 남문창의 의병은 장성, 순창, 남원, 인월, 함양을 거쳐 진주로 가는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주성 싸움이야말로 호남과 영남의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산술적인 병력 차이를 떠나 이룩한 실질적인 위대한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끝으로 "임진왜란에서 분연히 일어나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호남과 영남 의병들의 자취를 찾아,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당연한 의무"라며 "뜻하지 않은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오늘의 세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나침반"이라고 역설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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