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묵음으로 쓴 방랑자의 연민과 그리움

입력 2026.01.04 15:07 최민석 기자
손수진 시집 '천일을 걸어…' 출간
부재로 각인된 기억과 흔적
침묵으로 유유자적하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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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고뇌와 사색의 산물이다.

그래서 시에는 시인의 사유와 흔적이 드러난다.

손수진의 시집 속에는 부재하는 어떤 것들의 사색이 과하지 않게 그러나 환하게 견디고 버텼던 흔적으로 무늬를 놓는다.

손수진 시인이 신작 시집 '천일을 걸어 당신이라는 섬에 닿았다'(시와사람刊)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자신만의 연민과 희망을 담은 시편들을 다수 수록했다.

시인은 방랑자의 기질 또한 강해서 오늘은 소호에서 어제는 삿포로에서 다시 남해로 내일은 또 어떤 암자에 깊은 발자국을 새긴다. 그러나 그 깊은 연흔을 쉽게 타인에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부재, 그녀는 부재에 대한 욕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묵음으로 내리는 어떤 침묵처럼 가만히, 그러나 거침없이 직립보행을 한다. 그 어느 부근에 시인의 연민과 그리움 그리고 시가 존재하는 듯하다.

시집 속에 등장하는 부재에 대한 무엇들은 이제 그녀 몸속에 각인된 기억이나 흔적들이다.

그것은 상흔, 그러나 마냥 아프다기보다는 그 상처로 오히려 아름답게 무늬진 시인을 만난다. 맨발의 목수가 용목을 찾아 숲길을 헤매듯이 시인에게 당도한 이별이나 당신의 부재는 그녀 속에서 번개와 우레의 길이 되어 오히려 침묵, 어둠의 바탕이 된 별처럼 반짝인다.

"허술해서 좋다는 너의 곁에서는/ 마음껏 흐트러져도 좋겠다 싶은 날/ 여수 낭도에 들었다// 사막여우의 털빛을 닮은 노을은/ 붉은 등댓불과 흰 등댓불 사이를 물들이고// 바다에서 죽어/ 미처 떠나지 못한 혼을 가위로 오려놓은 듯/ 손톱달 하나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고// 유일한 포장마차의 따스한 불빛은 배고픈 사람을 불러들여/ 고흥 영남면에서 시집와 배 네 척을 거느린 선주였던 때가 있었다고// 레시피 없이도 술렁술렁 버무린 서대회무침에/ 백 년 전통이라는 젖샘 막걸리로 주인도 객도 취해가는 밤/ 바닷물도 턱을 고이고 오래도록 찰방거리며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낭도' 전문)

남도 한 섬을 찾아든 시인의 발길은 밤과 파도 사이에 머문다.

손현숙 시인은 "가슴 어딘가에 묻어둔 사랑 또한 하나님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비밀, 단단하게 그 사랑을 버티면서 지킨다"며 "그렇게 엮은 이번 손수진의 시집은 묵음으로 쓴 방랑자의 기록이고 지독한 사랑이면서 연민과 그리움, 그 어느 부근을 유유자적하는 지극한 응시"라고 평했다.

손수진 시인은 2005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붉은 여우' 등을 펴냈고 전남시인협회 부회장과 무안예총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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