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전당

한 시간 반의 특별한 출근···'낯선 직업'이 '꿈'이 된 시간

입력 2026.06.21 16:30 최소원 기자
[문화현장-ACC ‘우당탕탕 인턴십’]
일일 ACC 인턴 된 초·중·고생
부서별 제시된 미션 수행하며
문화예술 분야서 직업군 체험
‘컨서베이터’, ‘아키비스트’ 등
생소한 직업 관심 갖는 계기로
“진로 관련 시야 넓혀 좋았어요”
ACC 국제회의실에 모인 학생들이 진행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여러분은 오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인턴으로 입사하게 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정보원 국제회의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장흥에서 단체로 올라온 학생들은 저마다 기대와 긴장 어린 표정으로 책상에 놓인 업무 바인더를 들여다봤다. 이날 ACC에 모인 학생은 총 40명.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친구와 장난을 치며 웃는 학생도 있었고, 처음 보는 공간을 둘러보며 연신 두리번거리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평일 오전의 회의실은 어느새 실제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장처럼 바뀌어 있었다.

학생들이 ACC를 찾은 이유는 청소년 진로 체험 프로그램인 ‘우당탕탕 인턴십-나의 커리어 온보딩’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전시·공연·연구 등 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직업군을 직접 체험하며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기획된 디지털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이다. 직업을 소개하기만 하는 강의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ACC 최연소 인턴’이 돼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이 ‘풀어라! 수수께끼의 사원증’ 게임을 하고 있다.

◆사원증 하나로 시작된 스무고개

본격적인 프로그램은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인 ‘풀어라! 수수께끼의 사원증’으로 시작됐다. 학생들은 자신의 직업명이 적힌 사원증을 몰래 숨겨서 확인한 뒤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직업을 추리했다. 질문은 단순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네 직업은 컴퓨터를 많이 써?”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해?”

“무대 뒤에서 일하는 직업이야?”

학생들은 스무고개를 하듯 질문을 이어갔다. 공연사업과·전시기획과·연구조사과 등 세 부서 안에는 사서, 조명감독, 의상감독처럼 익숙한 직업도 있었지만 아카이브 큐레이터, 컨서베이터, 에듀케이터, 테크니션처럼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직업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학생들은 질문 카드에 적힌 질문을 바탕으로 서로의 직업을 유추했고, 정답이 공개될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너 테크니션 아니었어?”

“난 전시 디자이너였지롱.”

처음 듣는 직업 이름에 어리둥절해하던 학생들도 게임이 이어질수록 점차 직업의 특징을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놀이처럼 보였지만 문화예술 현장 안에서 어떤 역할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미완의 기획안을 완성하라

직업에 대한 탐색을 마친 학생들은 조별로 놓인 태블릿PC를 이용해 업무 시스템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했다. 화면에는 각 부서로부터 도착한 업무 협조 메일이 떠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도 조금씩 진지해졌다.

‘‘쿠쉬나메-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프로그램북 인쇄 발주가 다음 주 금요일로 다가왔습니다. 주간 회의에서 제작 상황을 점검한 결과 아직 연출, 무대, 조명, 음악, 의상노트가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정리된 프로그램 파일을 첨부했으니 먼저 첨부파일을 받아 작업 현황을 파악해주세요.’

실제 회사 메일처럼 구성된 문장을 읽던 학생들은 “진짜 일하는 느낌이다”며 웃었다. 첨부파일 속에는 공연과 전시, 연구 관련 자료들이 담겨 있었고 각 부서별로 해결해야 할 미션이 제시됐다. 공연사업과는 ‘미완의 프로그램북’을, 전시기획과는 ‘미완의 전시기획안’을, 연구조사과는 ‘미완의 아카이브 구축 계획안’을 완성해야 했다.

미션 수행을 위해 학생들은 실제 공간으로 이동했다. 공연사업과 학생들은 예술극장으로, 전시기획과는 문화창조원으로, 연구조사과는 문화정보원으로 향했다. 회의실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금세 현장 체험학습을 나온 탐험대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문화창조원 한편에서는 전시기획과 학생들이 입간판 앞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테크니션 직업군 학생들에게는 ‘어떤 업무가 테크니션의 역할인가’를 고르는 문제가 주어졌다. 보기에는 작품 설치, 스태프 교육, 예산 검토, 전시 홍보 등의 항목이 적혀 있었다.

“테크니션은 기술 담당이니까 작품 설치는 맞는 것 같아.”

“근데 스태프 교육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홍보는 홍보마케터가 하는 거 아냐?”

학생들은 정답을 두고 한참 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태블릿을 들여다봤고, 누군가는 직업 설명 카드를 다시 읽었다. 쉽게 정답을 고르기보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역할을 분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참 고민 끝에 정답 코드를 입력하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고, 학생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맞았다!”는 외침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연구조사과 학생들이 모인 문화정보원 역시 진지한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아카이브 자료를 어떻게 수집·분류·보존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계획안을 작성했다. 자료를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프로그램은 문화예술분야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동시에 협업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했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역할을 나누고 의견을 조율해야만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직업이 하나의 전시와 공연,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몸소 경험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문화예술 직업군과 첫 만남…꿈의 폭 넓혔다

모든 미션을 마친 학생들은 다시 국제회의실로 돌아와 ‘온보딩 업무일지’를 작성했다. 태블릿으로 느낀 점과 후배 인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대형 스크린에 글이 올라오는 방식이었다.

‘항상 네 생각을 믿고 깊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

‘밝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활동이었고 팀워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조명 감독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는데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학생들의 짧은 문장에는 한 시간 반 동안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군가는 처음 알게 된 직업에 흥미를 느꼈고, 누군가는 문화예술 현장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협업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학생들이 체험 소감을 ‘온보딩 업무일지’에 작성하고 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흥관산고 이한별(18·여) 양은 “인턴십이라는 이름 때문에 어려운 프로그램일 줄 알았는데 게임처럼 재밌게 참여할 수 있었다”며 “오늘 맡은 직업이 보존 처리 전문가인 ‘컨서베이터’였는데 처음 알게 된 직업이라 신기했다. 진로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장흥중 이인(16) 군도 “영어 이름의 직업들이 많아서 처음엔 어렵게 느껴졌는데 미션을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해됐다”며 “자료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을 새롭게 알게 됐고 실제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ACC ‘우당탕탕 인턴십-나의 커리어 온보딩’은 오는 7월과 9~12월까지 운영된다. 교육비는 무료이며 청소년 단체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글·사진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문화, 여행, 공연 등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50

아시아문화전당 주요뉴스